[HRD 칼럼]애매함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한다

2020-04-14

왜 우리는 첫사랑에 빠질까? 


대부분의 사람들과 조직은 애매함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한다.

명확하고 분명함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각 사안에 대해 이를 추구하거나, 확보하기를 원하며 분명함이 만들어졌을 때 잘했다 하고 만족해한다.

도대체 애매함 자체 또는 애매한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애매함은 불안한 정서와 연결되어 있고 향후 방향성에 대한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애매함은 발전을 초래하는 원동력으로 작동되기에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다.

애매함은 우리의 사고를 극적으로 자극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각 분야의 수준 높은 전문가들은 애매함을 즐겼거나 이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값진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 방영되었던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이란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하버드 법대생 중 최고의 실력을 지닌 학생의 자살 장면이다.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였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유는 그의 탁월한 성적이었다.

좀 놀아도 좀 게을리 공부해도 그는 항상 A +를 받았다. 모든 것이 변함없이 예측되었던 분명한 미래가 그를 실망시켰고 앞으로의 삶도 이와 같이 

재미없게 진행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이야기다. 분명함의 비극.


회사에서 일을 주는 리더가 업무 지시를 할 때 모든 경우의 수를 나누어 구체적이며 명확하게 요구하는 경우, 최선의 수행은 시킨 대로 하는 것이며, 

최선의 결과는 요구한 수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일을 지시할 때 희구하는 결과는 알려 주지만 방법론과 과정에 대한 언급 없이 애매함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지닌 모든 재능과 성실함을 동원하여 방법과 풀이 식을 스스로 구상하고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월드컵에 열광할까?

왜 우리는 첫사랑에 열광할까?

 

우리 대한민국과 독일과의 경기 전적이 이전 20년간 30전 30 패였고 최근 경기에서 7:0으로 졌었다면

이번 경기에 대한 애매함 또한 거의 없으므로 관심은 상당 수준 무뎌질 것이다. 

하지만 승부에 대한 애매함이 존재한다면? 

상황은 돌변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축구의 애매함이 가장 극적인 해였다.

사람들은 매 경기 애매함을 즐겼고 국민 모두에게 폭발적인 흥미와 에너지를 만들어 주었다.


매년 100명 정도의 이성을 만나고 이 생활을 10년 동안 지속해 온 사람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첫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때는 사랑에 대한 애매함이 존재했으므로.

경험이 많아질수록 애매함은 사라지고 경험과 데이터에 기반한 분명함이 높아지게 되고 “나 이거 알아"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결과에 대한 애매함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해당 사안에 대해 탐닉하며 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결과를 나름대로 예측하며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변수에 따라 고민하고 해석하며 준비한다.

애매함이 크면 클수록 관심과 열정은 상승한다. 애매함은 무지의 폭을 단시간에 줄여 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기제가 될 수 있다.

이 방식은 인류가 특별한 학습 없이도 유전의 방식으로 전달해 온 강력한 체제라 생각된다.

반면, 높은 확률 값을 미리 알 수 있거나 같은 판에 대해 수없이 겪고 보아온 경험 많은 사람들은 

대개 차분하며 관심의 정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경향을 보인다. 무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애매함은 사라져 버린다.


애매함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한다.

세상의 발전은 애매함을 즐겼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어린아이들은 이 점에 있어 스승이 될 수 있다.

“이게 뭐야?” “이건 왜 이래?”라고 끊임없이 묻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선입견이 없다.

항상 첫사랑을 경험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개의 조직에서 수없이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행해지는 리더의 분명한 지시는 수행의 정확한 이행에 초점을 맞추어

 이행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평가하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와는 달리 애매함은 이행하는 사람의 자유와 창의성에 초점을 두며 각자의 역량만큼 결과의 차이를 만들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결과를 이루어 내기도 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애매함을 즐기지 못할까?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은 항상 급하게 요구되고 진행되어야 하고 수행결과 또한 분명해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 애매함을 가질 현실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조직이 시간의 압박 속에서 분초를 다투며 일하고 있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빠르고 정확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조직이 이러한 경향을 지닌다.


둘째, 타인의 역량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가 보다 근본적이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면 내가 알고 있는 최선의 방식을 알려 주고 이를 잘 수행토록 관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속성에 기인한다. 지극히 타당성을 갖고 있는 이유들이므로 반박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간헐적으로 애매함을 즐겨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모든 일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새롭고 창의적이며 다양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각자의 사고를 멈추고 일정 시간을 정한 후 집단 또는 개인적으로 애매함을 즐겨보는 방식이다. 

판단을 지양한 채, 각자의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여러 사람이 동참할 수 있다면 집단지성의 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애매함의 힘을 음미하고 애매함을 통한 사고의 시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조직이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이제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 인키움 역량강화센터 전부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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